인생사 그저 허망한 구름 조각일 뿐
검색 입력폼
사설

인생사 그저 허망한 구름 조각일 뿐

치매. 참으로 무서운 괴물이다. 아무리 지독한 병이어도 자기 자신만은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르게 만들어버린다. 아직까지 완치약도 없다. 좁쌀 같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신분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는 평등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공포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도 치매환자였다.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자신의 이름도, 사랑하는 부인인 낸시 여사까지도 잊어버렸다. 영국의 전 수상 대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가 사진에서 그의 모습을 봤을 때 인생무상을 느꼈었다. 초점 잃은 희멀건 동공. 그저 한 사람의 늙고 병든 노파였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의 곁을 따라다녔던 철혈재상의 모습은 온 데 간데도 없었다. 이 두 거물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인물들로도 유명하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거물이었다.
우리나라 여성계의 거물 이태영 박사도 치매환자였다. 그에게는 수많은 최초, 수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다. 서울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여대생이기도 하다. 이화여전(현, 이화여대)을 수석 졸업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해서 법학박사까지 되었다. 1952년에는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최초의 여성 합격자였다. 하지만 원하는 법관은 되지 못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이유는 간단했다. 여성판사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조치다. 그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그 후 평생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여성의 인권 확립과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유교적 인습에도 저항했다. 그렇게 한세대를 풍미하고 영민했던 그도 치매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과거 은막의 여왕이라던 배우 윤정희 씨.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던 1960년대에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그도 말이다. 영화 330여 편에 출연하면서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24차례에 걸쳐 각종 영화상도 받았다. 출중한 미모에 훌륭한 연기. 그 당시 국민들의 부러움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도 치매를 앓다가 떠났다.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미래사회에 대해 이런 예언을 했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 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라고. 오늘날은 스마트 시대다.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백치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옛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줄줄이 외웠던 전화번호. 이제는 어렵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전화번호를 누가 가르쳐달라고 할 때도 대뜸 바로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게 자동화되어가는 우리들의 시대. 바보들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해 치매가 가속화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두렵다.
어떤 미래학자는 "미래는 전쟁도 활이나 칼로 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봐야 될 현상들 아닌가. 세상사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제발 아름답게 살자. 중상모리배들일랑은 되지 말고. 서로가 사랑하면서 살아도 주어진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면서 왜 그리들 삭막한가. 특히 정치인들은 명심하라. 자고로 정치인들의 뒤끝은 별로였다. 역대 대통령들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인생사 그저 허망한 구름 조각일 뿐이다. 사악한 욕심이 일그러진 초상만 만들 뿐이다. 오! 통재라.
임성욱 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