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름대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도 있기에. 그런데 벚꽃은 달랐다. 그 화려함, 그 아름다움 그리고 풋풋한 젊음.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극히 짧은 시간 안에 단호하게 결정해서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떠나버렸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욕망은 강하고 미지의 세계는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정표 없는 사거리에서 주저앉아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정표가 없다는 건 애당초 길이 없으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설령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서 집중한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다.
허영이나 과대망상 또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등의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런 것들은 그릇된 길로 들어서는 최첨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끝은 불행의 계곡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상처를 끄집어내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관찰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누군가는 말했다. '솔직하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타인을 속이면 벌만 받을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행복하듯이 자신의 능력도 솔직하게 스캔해서 잘 판단해야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하나를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살다가 보면 탄탄대로를 달릴 때도 있다. 하지만 험악한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도 있다. 이런 게 진정한 삶이 아닐까.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생각을 비워 줄 바람, 마음을 씻겨줄 파도, 그 정도면 난 충분합니다."라고. 필자도 힘들고 울적할 때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변산반도 모항비치에. 옛날의 모항비치는 고즈넉했다. 문명의 때도 없었다. 들었다가 나가는 파도 소리는 마치 소라의 노랫소리 같았다.
주말에도, 밤에도, 서울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들리곤 했다. 특히 겨울밤에 홀로 앉아 차갑디차가운 파도에 실려 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겨울 향기를 즐겼다. 한참을 그렇게 무아의 지경에 잠기다가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면서 얽혀진 실타래들을 풀어내곤 했었다. 그때 형성된 내공들이 오늘날까지도 커다란 힘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년에 또 이른 봄이 오면 벚꽃 세상은 활짝 피어날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돌고 돈다. 지금 혹시라도 힘들고 외로움의 블랙홀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낮이 있으면 밤이 오고 밤이 있으면 낮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임성욱 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