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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가봐라. 잔칫집에도. 서로들 윗자리에 앉으려고 난리들이다. 그래야 자신의 권위가 더 빛이 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받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산행 중 만나는 불특정 등산객에게 인사를 건넬 때도 반갑게 받아주면서 인사를 되돌려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큰둥한 모습으로 받아먹기만 하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말할 때는 입에 게거품 물어가며 장황설을 늘어놓지만 타인이 말하면 금방 시들해 버리면서 조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는 존칭을 써가며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타인에게는 대충하는 이도 있다.
남의 허물은 좁쌀보다 작은 것도 태산처럼 부풀려 동네방네 소문내면서도 자신의 큰 허물은 아예 없는 것처럼 가장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법이 있어도 그 법이 부족할 정도로 혼탁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도덕률과 종교가 있어도 오히려 부족할 정도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와 사찰 등 성전이 거듭 생겨도 이 세상의 혼탁함은 결코 맑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탁해져만 가는 것 같다. 이는 곧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그 어떤 방면에서도 자신을, 자기 집단을 낮추려 하는 자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지 않을까. 때문에 날마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서도, 경제권에서도, 점잖게 문화와 예술을 논한다는 문화계와 예술계에서마저. 어디 그뿐인가. 인간의 영혼을 달래주는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계는 또 어떤가.
가끔씩 스님들과 신도들이 뒤엉켜 소림사의 결투를 보여주지 않던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바세계의 욕심이 그대로 사찰에도 존재하기 때문일까.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대대로 상속하기 위해서 또는 신・구세력의 갈등 등으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런 하극상 행태들이 빚어질 때마다 절망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다른 곳도 아닌 종교계에서까지. 그들의 추한 모습들은 보통 인간들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더럽고 추해 보인다. 신을 빙자하면서 가장 하극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자들에게는 번질번질한 설교를 하면서도. 오죽했으면 목회자 자신들마저도 자신들이 한 설교의 10%만 목회자들이 지켜도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거라 했겠는가. 물론 목회자들도 인간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구역질 나는 모습들까지 보여줘서는 안되지 않는가. 명색이 신의 말씀을 전한다는 목회자들이.
만약 이렇게 말하는 세상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목회자의 길을 벗어나라. 그런 다음 범인들처럼 살라. 그러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런 부정적 현상들이 왜 발생할까. 겸양지덕이 사라져가기 때문이지 않을까. 겸손하게 되면 오히려 손해 본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기 때문에. 참으로 서글픈 현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겸손이 춤출 때.
광전매일신문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