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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대시민 집단 발포 직전 상황을 녹화해 최초 공개한 광주시민 문제성(71)씨는 27일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미공개 영상 시사회에서 “5·18 당시 더 많은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역 엔지니어 출신인 문씨는 45년 전 5·18 당시 광주시민들의 피어린 항쟁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외국계 사무기기업체의 광주지사에서 일하던 문씨는 1980년 5월18일부터 광주 전역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을 두 눈에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씨는 5월21일 초파일 오전 휴일을 맞아 영상 녹화 장비를 챙겨 거리로 나와 금남로에 세워졌던 아치형 구조물에 올랐다. 아치형 구조물은 19회 전남체전·61회 전국체전 선수단 응원 차원에서 설치됐다.
옛전남도청 앞에서 열을 갖춘 계엄군과 이에 대치하고 있던 광주시민들을 본 그는 챙겨온 8mm 카메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찍었다.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살해된 시민의 시신 2구를 리어카에 실어 옛전남도청으로 향하는 모습, 옛전남도청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UH-1H)와 군용 수송기가 그의 시야에 포착됐다.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시민들이 몰고 온 장갑차와 이 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시민들, 계엄군의 최루탄 투척으로 무너지는 시위대의 대열, 최루탄 속에서도 리어카에 실린 시신을 지켜낸 시민들의 모습 등도 빠짐없이 담았다.
주변의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모두 담기에는 챙겨온 필름의 양이 부족했다. 3분 여 길이의 영상을 두 번 녹화할 수 있을 분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모든 상황을 담았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 무사히 금남로를 빠져나온 문씨는 5·18 이후 자신의 촬영물을 서울의 한 현상소에 맡겼다가 무사히 되돌려 받았다.
이후 친구들과 종종 영사기 속 1980년 5월 광주를 되돌려봤다던 그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필름을 점점 까맣게 잊어갔다.
필름의 존재가 다시 그의 뇌를 스친 것은 최근 아버지를 여의면서부터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필름의 존재를 떠올렸다. 필름은 유실되지 않고 집안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그는 45년 전 항쟁의 역사를 가만히 가지고 있어선 안되겠다는 마음에 5·18기록관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기증한 영상은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을 바라보는 각도에서 촬영된 ‘왜곡이 없는 녹화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간 외신 또는 군 당국 자료를 통해 확인한 영상물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라는 평이다.
특히 계엄군의 집단 발포 직전 정황을 복원할 수 있는 핵심 자료라는 평가도 받는다. 기존에 공개된 영상물 중 일부는 필름 순서나 시간대가 뒤바뀌거나 연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촬영 시각 등이 명확히 보존돼 계엄군 측 진술 진위나 영상 조작 의혹을 교차 검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현재까지도 행방이 묘연한 리어카 속 시신에 대한 행방을 추적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평도 나온다.
문씨는 “점심 직후 다시 거리로 나서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말리면서 나가지 못했다. 그때 나갔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수 있다”며 “작업이 마무리될 경우 음성도 복원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영상이 5·18의 진상규명에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록관은 기증받은 영상에 대해 추후 고해상도 복원 작업 등을 거쳐 일반에 공개할 방침이다.
전광춘 기자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