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면 어느 한쪽 길은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두 길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갈 수 없는 길을 타인들이 못가도록 막아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기어코 가려한다. 결국 혈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그 누구에게도 유리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승자나 패자나 엄청난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은 유한하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의 길이는 70대 중반에서 80대 중반 정도다. 그 이상의 삶을 영위하기는 어렵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100세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살더라도 온전치 않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패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월 앞에서는. 때문에 자신이 하나를 선택했으면 다른 하나는 남이 갖도록 놔둬야 한다. 아무리 아쉽더라도. 사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되기는 쉽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에 대해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상사란 그렇다. 아무리 수많은 노력을 해도 해결점을 찾기는 어렵다. 때문에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영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이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이 맑으면 눈이 맑아져 잘 보게 되어 있다. 부모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많은 것을 가져도 말이다. 때문에 오늘날처럼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맑을 영을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영성에 심취하려고 노력한다. 영성신학, 영성철학 등의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사에 찌들대로 찌든 정신을 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을 스스로 조율하지 못하게 되면 정신과 질환을 앓게 되고 이는 곧 삶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영이 흐려지는 것이다. 문제는 두려워하면서도 영을 더럽히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는가.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어떤 종교든 사교가 아니라면 가져보길 바란다. 물론 종교를 전파하는 목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잖은가. 묵묵히 수행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제도하려고 노력하는 목회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또한 교리 그 자체도 좋다.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믿으면 된다. 그러다보면 영이 맑아져 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정치권이, 각종 이익단체들이 싸우고 있다. 생전에 얼굴자체를 맞대하지 않을 듯이. 그러면서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자신이 속한 회원들을 위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난세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성서의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복음 23장 25절~26절)는 오늘날의 세태를 그대로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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