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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순우곤전(淳于髡傳)>에 배반낭자(杯盤狼藉) 이야기가 나온다. 제(齊) 나라 위왕(威王)이 초(楚) 나라 공격받자, 외교술의 달인 순우곤을 조(趙)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구원병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기쁜 마음으로 귀국한 순우곤을 위해 위왕은 후궁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위왕은 순우곤에게 "그대는 술을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가"하고 물었다. 순우곤은 "한 말(斗)로도 취하고 한 섬으로도 취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위왕은 "한 말로 취하는 사람이 한 섬을 마실 수야 없지 않겠소?"라고 반문하자, 순우곤 말하기를 "대왕과 같이 술을 마시면 황송하여 한 말이라도 취하지만, 다정한 친구와 마실 때는 두서너 말, 대여섯 말이라도 취합니다. 게다가 남녀가 뒤섞여 술 마시다 주연이 절정에 이르고, 등불이 꺼지면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러이 흩어지고, 내 곁에서 비단옷의 젖가슴이 풀어지고 은은한 향내가 풍겨오면 능히 한 섬을 마십니다."라고 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요란한 술꾼이었다. 그는 가까운 동지 '트로츠키'를 시베리아로 추방시킨 이유를 물었다. 스탈린은 버럭 화를 내며 "그는 이상한 위스키를 마시잖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증오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된 고급 포도주나 '싱글몰트 위스키'만 마셨다. 스탈린은 술에 취해 침대로 업혀가면서도 부하들을 지팡이로 때리며 자기 술을 훔쳐 갔다고 욕을 해댔다.
지난달 중순 이성윤 국회의원이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2019년 초에 울산지검 검사 30명이 청사 식당에서 특활비로 술판 벌리고, 만취한 상태에서 한 검사가 테이블을 발로 차 술잔 깨뜨리고, 검사 구타하고, 어떤 검사는 복도 바닥에 누워 자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민원실 바닥에 대변이 다량 발견되어 환경미화원에게 현금을 주고 수습했다"라며 검사들의 낭자(狼藉)를 폭로했다. 아마도 진도 홍주 40%와 연태 고량주 40% 혼합 음주했으니 몸속에서 80% 불이 타니 어느 누구인들 인사불성 하지 않겠는가. 현대판 배반낭자(杯盤狼藉)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주사(酒邪) 행위는 비단 검사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조직사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사회적 높은 직위를 가진 검사들이 청렴성, 공정성, 공공 서비스 헌신에 선도 수범이 아쉽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을 개검, 떡검, 색검이니 하며 사회적으로 비난받다가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똥검'이라는 최 악명까지 하나 더 얻으니 검사의 위상은 급기야 바닥 추락이다. 특히 검찰 출신 대통령이 술을 좋아하여 구설수가 횡행하는데, 현직 일부 검사들의 음주 추태로 국민에게 걱정 끼쳐드렸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산 윤선도는 술을 경계한 시를 읊었다. "술을 먹으려니 덕(德)이 없으면 문란하고, 춤을 추려니 예(禮) 없으면 난잡하니 덕예를 지키면 만수가 무강하리라"라고 했고, 그리스 철학자 '아르케시우스'는 "술은 인격을 반사하는 거울이다."라며 음주를 경계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음주는 필요악이다. 자기 주량과 상대인 술의 도수만 알고 마셔도 주사는 면할 수 있다. 이것이 개과자신(改過自新)하는 길이다.
▲ AOU대학교 전) 교수 이동환
이동환교수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