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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독일의 대학에는 '학생 감옥'이란 게 있었다. 대학생이 술에 취해 누구를 때리는 등의 경범죄를 지었을 때, 경찰을 대신해 벌을 내리기 위해서다. 죄의 경중에 따라 하루에서 30일간 가두었는데, 처음 3일 동안은 물과 빵 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다른 음식이나 술도 허용되고 수업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오히려 낭만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이 감옥에 마르크스도 들어갔는데, 그 죄목은 고성방가(高聲放歌) 및 음주, 싸움질 등이었다. 이밖에 그는 금지된 무기를 갖고 있다가 고발당하기도 하였으며, 더 나아가 흥청망청한 돈 씀씀이로 빚을 지기까지 한다.
본(Bonn) 대학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한 후, 마르크스는 베를린대학 법학부로 전학하여 법학과 역사학, 철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헤겔의 철학에 큰 관심을 쏟았다. 소장파 젊은 학자들이 운영하던 '박사 클럽'에도 참여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이 모임의 정신적 지도자까지 되었다. 그곳에서 밤낮없이 토론에 열중하였던 바, 친구들은 그를 가리켜 '사상의 창고'라거나 '이념의 황소대가리'라고 불렀다.
그는 베를린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생활 역시 아버지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로부터 "학문의 모든 분야를 어정쩡하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침침한 석유등잔 아래서 애매모호한 야심을 품고 학자 차림으로 망나니짓을 하는 놈,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모르는 제멋대로 된 녀석" 이라는 욕을 먹게 된다.
그러나 23세 되던 해인 1841년, 마르크스는 한 시간도 출석한 적이 없는 예나 대학에 논문을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도 독일 대학에는 수강 신청이나 출석 체크가 없다. 출석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시험에만 합격하면 되는 것이다. 시험에 자신이 없으면, 다음 학기로 미루어도 된다. 시험은 원칙적으로 구두시험이다.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을 때에는 필기시험을 보기도 하는데, 노트와 책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대신 3시간이 걸릴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
▲광주교대명예교수, 철학박사
유튜브'강성률철학티비'개설
강성률 교수
강성률교수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