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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성찰하면서. 그래서 쉼이 계기가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 휴일을 가리키는 "holiday"는 성스러운 날을 의미하는 "holy day"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쉼은 또 다른 발전을 위한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바쁘다. 딱 잡아서 별로 바쁜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나면 바쁘다. 이렇게 분주한 생각을 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덧 종점에 다가왔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을 마감 지어야 할 종점. 이보다 더 쓸쓸한 종점이 어디에 있을까. 그 어떤 동반자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 되니 말이다.
그렇게도 악착같이 모아서 쌓아놓은 재산은 또 어디에 쓸까. 먹지도, 입지도, 나누지도 못한 물질들을. 무한한 욕망이 결국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하면서 떠나는 것이다. 이때까지의 인생역정은 어땠을까.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줬을까. 또한 받은 원망은 그 얼마일까.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자식들이라고 반가워할까. 돈을 달라고, 집을 사달라고 보채는 자녀들의 말은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피붙이로부터도 얼마나 많은 원망의 그늘을 쌓았을까. 종점에 다다라서야 그 모든 것들이 허망하다는 생각에 잠겨본들 무슨 소용인가. 성서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는 구절도 이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짧은 인생을 돋보기 끝에서 빚어지는 한 점의 좁쌀보다도 더 못 보고 살아온 삶이 슬프지 않을까. 이러함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 순간에도 재물에 목말라 날뛰고 있을 것이다. 그 재물의 획득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그에 걸맞는 죄를 지어가면서. 음침한 회색빛 종점은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코앞에 다가오는 어두운 종점을 관념적으로는 느끼면서도 자신만은 피해갈 것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기기묘묘하지 않은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현대문명이 발달해갈수록 더 심해져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이 순간에도 아비규환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진리는 이런 현상들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을 호모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라 하지만 100세를 넘기는 사람들은 극히 희귀하기 때문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수명의 한계는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제발 이런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그러면 재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허비하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과연 이런 날이 올까. 지구에 종말이 오기 전까지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단, 치매 등을 비롯한 바보들의 세상이 되면 혹시 모르지만.
▲시인, 사회복지학박사
임성욱 박사
임성욱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