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피워보지도 못하고 꽃 몽우리 채로 사라져 가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다. 피해자보다도 오히려 더 당당하고 더 악랄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부모에 그 자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라서 무엇이 될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가슴이 답답해 옴을 금할 길이 없다.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것은 교육의 문제라고 본다. 특히 일등주의를 지향하는 입시위주교육 등이 한몫을 단단히 한다고 본다. 최소한 초・중학교 시절만이라도 문학과 도덕교육 등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 대신 삭막한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언제 인격도야를 할 수 있겠는가. 요즘은 경쟁교육이 태중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태교는 옛날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질이 다르다.
옛날 교육이 주로 인격도야에 치중했다면 오늘날은 학습 위주가 대부분이다. 태중 영어교육을 시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러니 태어나자마자 학원을 다니는 것 아닌가. 언어의 표현과 수용능력이 매우 부족한 영아들까지 학원으로 보내지고 있단 말이다. 그런 삭막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도덕과 감성을 감히 바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들이 너무 착하면 오히려 걱정을 하게 된다. 장차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악하게 살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이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요즘 자살학생들이 이슈화되자 여기저기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난리들이다.
하지만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이런 현상을 불러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도 각자의 이기주의적인 입장에서 마련하려고 하니까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겠는가. 오죽했으면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해로운 병원체는 인간이라 했을까. 인간이란 바이러스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가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 놓인 아주 작은 이익 때문에 멈추지를 못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 아닌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남을 괴롭힌 사람들이 임종에 이르러서야 회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을 증오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마저도 하지 않고 가버리는 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우리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그 행복을 구가하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을 하고 또한 받자.
시인,사회복지학 박사
임성욱 박사
임성욱 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