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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제13장 4절~13절에 있다. 이미 각국의 노래 말로도 수없이 사용되었다. 그만큼 좋은 글이다. 진리다. 그런데 무섭다. 이대로 다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글을 쓴 사도 바울마저도 자신에게는 이런 사랑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를 인용하는 필자도 무섭다. 쓰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써가고 있다. 어린아이는 선과 악을 잘 모르잖은가. 두려움도, 피아도, 진리도 잘 모르는 철부지. 요즘 세상은 경계가 없어져 버린 듯하다. 때문에 함부로 비난하고 저주까지도 뱉어낸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독설들. 이를 중계하는 매스컴. 세상을 온통 오물통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에는 남녀노소도 따로 없다. 마치 경쟁하듯이 짖어댄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들. 조폭보다도, 망나니보다도 더 지독한 행위들을 하기도 한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피워대는 흡연은 또 어떤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가래침 뱉어가면서 피고 뱉는다. 낭만이 꽃피어야 할 대학캠퍼스.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신입사원들의 경우, 차 한 잔도 동료들과 나눠 마시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자신이 돈을 내지 않는 경우는 젓가락도 없이 달려들고. 이런 각박한 모습들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만남이 없다. 당연히 대화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교육도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살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을 이루는 가정이라는 집단이 이럴 정도니 그들이 속한 사회는 어떻겠는가. 밝고 맑아질 수가 없잖은가. 그러니 눈뜨면 보이고 들리는 것은 온통 아비규환의 곡소리뿐이지 않겠는가. 참으로 애재다. 통재다. 이를 조금이라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곳이 교육기관과 종교기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 기능도 망가져 버린 지 오래다. 인간의 마지막 보류라는 종교기관 역시 이런 흐름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다른 곳보다는 탁류가 덜 흐르기는 하겠지만.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더 대접을 받는다.
물질적으로는 물론 영혼까지 황폐해져 버려 무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편안히 쉴 곳은 이미 아니란 말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런 광란의 세상. 조금이라도 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보면 어떨까. 앞서 말한 성서 구절을 좀이라도 곱씹으면서.
시인,사회복지학 박사
임성욱 박사
임성욱 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