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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자신의 8단계 이론 중에서 8단계째를 자아 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이라 했다. 이 시기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다. 전형적인 쇠퇴기다. 부정적이며 정적인 시기이고. 하지만 이 시기 역시 내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시기라고 에릭슨은 말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갈등은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고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등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다양한 후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잘 수용하고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합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 이전의 세대 및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일관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혐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할 경우에는 절망감이라는 부정적 특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생물은 물론 무생물들까지도 풍화되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라져 간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문학평론가이자 국어국문학자였던 고 이어령 박사는 생전에 '우편번호 없는 편지'를 수도 없이 썼다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사랑스럽고 귀여운 어린 딸에게. 생전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굿나잇 키스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다. 눈에 넣어도 시원치 않을 어린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리 못했음을 인지한 것이다. 이 얼마나 통곡할 일인가. 하지만 이미 때는 지나가 버린 걸 어찌할 것인가. 생존해 있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살 것 같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언제 사망할지 모른다. 치매 등 몹쓸 병을 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래서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이기에 더더욱. 하지만 사망한 뒤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때문에 생존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낳아주고 온갖 사랑으로 길러서 현재를 있게 해준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 예의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을 잘 가꿔가는 것이다. 상황에 맞게. 이는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가족을 위한 일이고. 세 번째로는 주변을 비롯한 국가사회를 위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 나날이 줄어가는 삶의 길이를 아름답게 가꿔가기 위해서.
시인,사회복지학 박사
임성욱 박사
임성욱 박사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