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 입은 어매의 외침 “5·18 희생 헛되이 되게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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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 입은 어매의 외침 “5·18 희생 헛되이 되게 마소서”

남편·아들·가족 묘역 찾은 5·18 희생자 유족들
“12·3계엄, 소중한 민주주의 흔들릴 위기” 한탄
문재학 열사 어머니 “희생자 피로 이룬 민주주의”

‘고교생 5·18시민군’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가 5·18민주화운동 45주기를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문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광전매일신문] “민주주의를 이룬 이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소서”
5·18민주화운동 45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흰 소복을 입은 ‘5·18 어매’들은 이날도 45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분연히 싸우다 산화한 아들, 남편, 가족을 찾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5·18 고교생 시민군’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45주기를 맞는 5·18이 유독 사무친다.
전두환의 정권찬탈 과정에 맞서다 산화한 아들을 향해온 관심과 조명이 최근 그 어느때보다 컸었던 만큼, 빈자리의 그늘도 유독 짙다.
문 열사는 1980년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도중 5·18을 마주했다.
문 열사는 광주시내를 지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양창근 열사가 숨져 있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시민군에 합류했다.
문 열사는 5월22일부터 옛 전남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거나 유족을 안내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5월25일 어머니 김길자 여사의 절절한 귀가 호소에도 ‘초등학교 동창이 죽었다. 계속 남아있겠다’고 밝혔다.
문 열사는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 최후항전이 벌어진 5월27일 새벽 같은 학교 동급생 고 안종필 열사와 함께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숨졌다.
문 열사의 일대기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온다’ 속 주인공으로 되살아나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오는 18일 5·18 정부기념식에서도 문 열사의 사연이 조명될 예정이다.
흰 소복을 차려 입고 아들의 묘소를 찾은 김 여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렵사리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서글픈 눈으로 묘비 아래 영정을 한참 쳐다봤다.
김 여사는 “5·18 최후 항전에서 숨진 희생자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다. 도청으로 간다던 아들을 막지 못한 죄책감이 이제는 자랑스러움으로 거듭났다”며 “아들이 품었던 뜻은 45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모든 희생자들의 뜻과 같다. 아들이 ‘열사 문재학’으로서 널리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전 관장도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해 남편 고 명노근씨의 묘지 앞에 섰다.
매년 오는 묘역이지만 45주기를 앞둔 이날 설움은 그 어느때보다 북받친다. 금방이라도 남편의 묘비를 안고 통곡하고 싶지만 세월이 주저앉힌 몸이 이날따라 더욱 야속하다.
그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로 이뤄낸 민주주의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으로 흔들릴 위기에 놓일 뻔한 것을 두고 한탄했다.
이어 나라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의 하얀 소복 위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안 전 관장은 “이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군부 독재의 나라가 됐을지도 몰라요”라며 울먹였다. 이어 “그런데, 아직도 이 나라가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고 해메고 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게 하지 마소서”라며 울부 짖었다.
5·18 당시 부상을 당했다가 훗날 숨진 고 강현웅씨의 부인 윤화숙(64)씨도 어린 손녀와 함께 남편의 묘지 앞에 다시 섰다.
어린 손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 묘역에 있는 풀을 다듬었다. 할머니인 윤씨로부터 경험하지 못한 5·18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픈 듯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씨는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후문에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검문하는 계엄군에 의해 붙잡혀 구타당한 뒤 구금됐다.
그는 청춘의 모습을 간직한 그리운 남편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윤씨의 근심은 아내의 손에 남은 45년 세월의 깊은 주름 만큼이나 깊었다.
그러면서 “당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는데도 아직도 계엄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승원 기자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