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막아낸 5·18민주화운동 정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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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비상계엄 막아낸 5·18민주화운동 정신 ‘재조명’

계엄군 포위, ‘해제 의결’ 무산 위기… 시민이 국회 지켜내 비폭력 민주수호 의지 돋보여… 군도 부당명령 소극이행 맹추위 속 나눔·연대로 주권자 행동… ‘헌정 회복’ 원동력 “45년 전 5·18 경험·교훈, 민주주의 든든한 뿌리” 재조명 5·18정신은… “정의로운 민주주의 시금석” “국민저항권”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5·18 이젠 헌법에<상>
87년 민주화 이후 초유의 12·3 비상계엄을 국회 의결로 해제, 민주 헌정 질서가 점차 회복되고 있는 배경으로서 5·18민주화운동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45년 전 계엄령으로 권력찬탈 내란을 꾀한 신군부의 총칼 앞에 분연히 맞선 5·18의 경험과 정신적 유산이 이번 헌정 위기 극복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잊을만 하면 되살아나는 반민주 권위주의 세력의 폭거와 민주주의 퇴행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겨 민주주의의 표상이자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주의 근간인 국회·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마저 뒤흔들려 한 12·3 비상계엄을 평화적으로 저지, 헌정질서 안에서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내란 수사 등을 이끌어낸 주역은 시민이었다.
주권자로서 시민이 헌정을 지켜내고 나눔·연대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었던 뿌리에는 45년 전 계엄에 맞서 항거한 5·18의 경험과 교훈이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9분을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선포 1시간여 만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 1호에 따라 헬기 등으로 급파된 계엄군이 국회를 에워쌌다.
45년 전 계엄 미명 아래 불의한 권력에 민주주의가 짓밟힌 것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이번에도 민주 헌정 질서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뜻이 모였다.
대통령이 계엄 요건인 어떤 전시·사변 상황인지 명쾌히 밝히지도 않았고, 제대로 알 수조차 없는 혼돈의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침착하고도 현명하게 대처했다.
'민의의 전당'이자 헌법상 유일하게 계엄령 해제 권한이 있는 국회가 장악·무력화될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섰다.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에 힘입어 국회 관계자와 보좌관들도 군의 진입을 저지하며 계엄 해제 의결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비폭력적이면서도 위헌·위법에 맞서 민주 헌정을 지키겠다는 결기 앞에 계엄군마저 강경 진압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계엄군은 주권자를 지켜야 할 총을 시민에게 겨누라는 부당 명령에 소극적으로 임하며 물리적 충돌의 불상사만큼은 피하려 했다.
국회가 6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의결한 이후에도 시민들은 연일 전국 각 도시 광장에 모여 위헌·위법한 계엄을 규탄했다.
계엄 선포 과정에 절차와 민의를 모두 경시한 대통령의 파면을 외치며 탄핵 소추안 의결까지 이끌었다. 나아가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체포·구속 기소하는 데 이르기까지 준엄한 민심을 꾸준히 보여줬다.
특히 맹추위 속에서도 시민들은 따뜻한 음료로 선결제 나눔을 주고받으며 민주 질서 회복에 한마음 한 뜻으로 연대했다.
불의에 맞선 시민 저항과 연대·나눔의 5·18 정신이 45년 만에 다시 한번 되살아나며 새삼 그 가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제는 민주주의 헌정의 굳건한 버팀목이자 정신적 표상으로서 5·18 정신의 의의를 재정립하고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2일 "5·18 정신을 상징하는 '민주·인권·평화'에 이제는 '정의'도 포함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계엄 선포 당시 국회를 지키고자 달려간 시민들과 소극적으로 임무 수행에 나선 계엄군·경찰의 모습에서 1980년 5월 광주정신이 굳건히 지키려 했던 '정의'를 엿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민주주의는 본래 허약하고 불안정한 체제다. 시민들이 관심갖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민주주의가 유지·발전할 수 있다. 이제는 5·18 정신을 우리 민주주의의 시금석(試金石·규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정의'라는 바탕 위에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끊임없는 민주주의 완성 과정이 5·18 정신이다"고 강조했다.
이영재 한양대 시민사회학과 교수도 "오늘날 헌정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지켜질 수 있었던 과정에 5·18이 지닌 의의가 적지 않다. 관념에 불과했던 국민 주권과 저항권 개념을 실체로써 보여준 5·18 정신이 이제는 완성돼 가는 단계(공고화 단계)로 보인다. 현행 헌법에는 국민 저항권이 명기돼 있지 않다. 헌법을 통해 5·18 정신이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광춘 기자 gwangmae56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