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아름다운 화원 될 때까지
편집국 gwangmae5678@hanmail.net
2025년 03월 10일(월) 09:39
평화. 누구나 향유하고 싶은 로망이다. 국어사전에는 "평온하고 화목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성서(요한복음14장 27절)에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고 기록되어 있다. 여하튼 성서에서도 평화를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도 표현법만 다르지 그 기저에는 평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좋은 평화가 그득해야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혹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행복도 스며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노력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잖은가. 왜 그럴까.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재능이나 취향을 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재능이나 취향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스스럼없이 가는 곳이 바로 그것일수 있다. 그렇다. 마음이 가는 곳에 자신의 삶을 키워갈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을 잘 기르면서 원하는 기도를 할 때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이에는 조건이 있다. '간절함' 말이다.
그 힘이 클수록 그만큼의 힘이 작동되어 소원이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간절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바라는 것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되고 그것이 곧 마음의 분열을 가져온다. 이로 인해 평화도, 행복도 자신의 곁에 머무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순간적으로는 간절한 소망을 기도하다가도 곧 주변 환경 속에 함몰되어 멈춰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비교'라는 악마의 덫에 걸려버린다. 때문에 자신보다는 타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즉, 매사를 남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행복이 머무를 수 없다.
비교하는 삶은 언제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욕망덩어리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 특히 내적 환경 말이다. 내적 환경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함양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서있는 곳을 세상의 중심축이 되도록. 그래야 그곳이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환하게 밝혀줄 빛 말이다. 그 빛이 주변을 밝혀주면서 세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평화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고 행복 또한 마음껏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삶이지 않을까. 이런 세상에는 고통이 스며들 공간이 없을 것이다.
우주의 모든 긍정적 에너지가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 또한 스며들지 못할 것이다. 강력한 항체가 생겨서 방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비록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세상의 중심축으로 삼으면 바로 이 같은 삶을 향유할 수 있다. 만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행복한 삶 말이다. 그렇게 모두들 행복의 왕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진정 아름다운 화원이 될 것이다. 그날을 향해 각자가 원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보지 않겠는가. 중간에 절대로 중단하지 말고.
편집국 gwangmae56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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