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황제가 부른 “내 고향 나주장터” 이동환 교수 gwangmae5678@hanmail.net |
2025년 02월 12일(수) 0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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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나주장터'를 찾았다. 만나는 사람도 표정이 굳어있고, 가는 거리마다 소상인의 표정도 얼어 있어 을씨년스럽다. 국밥집에 가니 몇몇 사람이 가수 황제가 부른 "고향 나주장터"의 노래 들으며 세상을 개탄하고 있다.
내 고향 하행선에 열차를 타고
영산강 굽이굽이 돌아 내 고향
나주평야 호남평야 신토불이 명품 나주배
동지섣달 눈보라 속에 나주장터 골목길에서
굶주린 배 움켜쥐며 배 부르다 말씀하신
자식 걱정 울 어머니 꿈에라도 보고 싶어요
내 고향 나주장터 어머니 사랑
가던 길 멈추고 이 노래를 들으니, 가사에 정감이 가고 음색이 좋아 내 마음속까지 감흥으로 채워진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 듣지 않는 만큼, 보이지 않는 만큼 세상을 잊고 사니 또한 이 몸이 평온하다.
이 노래를 부른 황제(본명, 이상채) 가수는 이곳 나주 다시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성장하면서 애환이 서린 곳 장터였다고 한다. 22세 때 창원 청탑호텔에서 'MBC 가수 선발대회'가 있었다. 여기에 3000명이 응시했는데 그가 부를 순서가 2999번이었다. 나주에서 버스 타고 창원에 도착하니 이미 심사가 끝나고 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수의 꿈을 포기할까 하다가 주체 측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무대의 밴드가 철수하여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기타를 가지고 왔으니, '입선 안 해도 좋습니다'라며 평가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애원하는 모습에 흔들렸는지 "한번 해보라!"하였다. 기타로 준비한 노래를 유감없이 불렀다. 심사한 PD 한 분이 15등으로 입선시켰다. 그리고 본선에서 5위로 입상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의 꿈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악보 연주와 작사, 작곡을 꾸준히 연구하고 절차탁마하여 '내 고향 나주장터', '사나이 눈물', '나는 왕이다', '광안리 대교' 등 4곡 작사했다. 특히 지금 뜨고 있는 '내 고향 나주장터'의 가사와 작곡은 황제 가수가 했다. 이 노래를 작사하게 된 배경은 김현 가수가 부른 '고창에서 왔어요!' 듣고, 가슴이 울컥하여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1달 동안 직접 붓을 들고 가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트로트(Trot)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었다. 그가 느낀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1915년 제1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시인 '한스 라입'이 전선으로 떠날 때 애인을 그리며 썼던 시에 1937년 '노베르트 슐츠'가 곡을 붙여 만든 '릴리 마를린(Lili Marleen)' 트로트라고 했다.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병영의 정문 앞에
여전히 그녀는 서 있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네
예전에 릴리 마를린이 그랬듯이
예전에 릴리 마를린이 그랬듯이
이와 같이 전쟁터에서 군가처럼 불렀던 트로트풍(風)이 한국으로 건너와 대중음악의 장르로 변화 발전되어,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많은 사람에게 격려와 꿈을 주었다. 60~70년대에 트로트는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으로,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감정을 반영한 가사가 큰 인기를 끌어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황제 가수도 노래 가사에 더 치중했는지 모른다. 그는 기쁠 때 부르면 기쁜 노래가 되고, 슬플 때 부르면 슬픈 노래가 되는 트로트 가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고,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절절하게 들렸던 트로트는 '내 삶의 응원가'였다고 했다.
가슴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와 감정을 요리할 수 있는 가사 작성 재능까지 겸비한 황제 가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땅에서 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남성의 목소리로 평가받아 별호(別號)처럼 황제 가수로서 언제나 어려운 서민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희망을 주는 가수가 되어주길 바란다.
국밥에다 탁주 한 사발 들이기면 온갖 시름 다 잊게 만든 정겨운 나주장터! 또 한 번 가서 가수 황제의 노래 '내 고향 나주장터' 노래 들으며 포근한 옛 고향 어머니를 느껴보고 싶다.
▲ AOU대학교 전)교수 이동환
이동환 교수 gwangmae5678@hanmail.net